‘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 종영…3.3% 동시간대 1위, 유종의 미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가 보이지 않는 세상의 곳곳에서 '뒷것'을 자처하며 살아간 김민기를 조명하며 3부작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5일 방송된 SBS 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에서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탄생시킨 연출가 ‘아침이슬’의 천재 음악가 김민기의 잘 알려지지 않은 행보를 조명했다.
김민기가 유독 학전 어린이 무대에 열정을 쏟았던 이유와 함께, 그가 어린이들을 위해 행했던 헌신들이 공개돼 방송 당일이었던 ‘어린이 날’의 의미를 한층 뜻깊게 만들었다.
이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의 시청률 3.3%를 기록하며 동 시간대 방송된 전 채널 프로그램을 통틀어 1위를 기록했다. (닐슨 코리아 기준)
이날 방송은 김민기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위치한 민간인 통제 구역에서 농사꾼으로 살았던 특별한 이력을 조명하며 흥미롭게 시작했다.
신군부 시대가 열리고, 혼란한 정세 속에서 정권의 탄압을 받던 김민기가 ‘너 죽는 꼴 보기 싫다’는 모친의 간곡한 말에 주변과의 연락을 모두 끊고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귀촌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당시 농사를 지을 줄도 몰랐던 김민기는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품앗이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의 운동회와 졸업식에 참석해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나누며 단꿈 같은 1년여를 보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민기는 농촌의 수익을 위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썼다.
그는 쌀을 팔고 싶지만 판매 루트가 없어 가슴앓이하는 주민들을 위해 당시 광고 기획자인 친구 이상우의 도움을 받아 신문에 광고를 싣고, 연천과 도시를 직접 연결해 중간 유통마진을 줄인 판매 구조를 만들어 농부들에게 높은 수익을 안겼다.
이처럼 농촌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던 김민기는 연천 집이 의문의 화재로 전소되는 바람에 농촌 생활을 접고 다시금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민주화를 소망하는 대중의 염원이 극으로 치달은 1987년, 故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시청광장에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애국가처럼 울려 퍼졌고, 당시 선봉에 섰던 안내상은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로 위로받았고,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
김민기 선생님의 역할이 대단했던 것”이라며 김민기의 영향력을 증언했다. 그러나 정작 김민기는 “나 역시 이한열 열사 노제에 갔었다. 사람들이 ‘아침이슬’을 부르는데 소름이 끼치긴 하더라. 그 순간 그 노래는 그 사람들의 것이었다”라며 역사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한걸음 물러섰다.
그런가 하면 신군부 시대가 막을 내리고, 김민기는 15년 만에 비로소 금지곡 가수 신분에서 해방되면서 ‘학전’의 대표로서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학전에서 탄생한 걸출한 문화 콘텐츠가 대중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훨씬 다양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놀라움을 안겼다.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연을 시작해, 인기 예능이었던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이소라의 프로포즈’의 전신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모두 학전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또한 김민기는 2004년을 기점으로 학전에서 어린이 무대를 선보였다. 어린이들에게 판타지를 보여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고민을 본질적으로 이해해 주려는 목적에서 만든 작품들로 김민기가 학전 설립 당시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었다.
김민기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이야기,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 등 현실적인 주제를 어린이 무대에 담아냈는데 이를 위해 초등학교 전 학년, 전체 교과서를 공부했다는 사실이 공개돼 놀라움을 자아냈다.
더불어 어린이 무대 티겟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해 보다 많은 아이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고, 운영난 속에서도 소위 돈이 안되는 어린이 무대를 20년 동안 고집하며 어린이들을 향한 진심을 드러냈다.
특히 김민기가 학전에서 어린이 무대가 있는 날이면 매번 객석에 내려가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곤 했다는 일화는 훈훈함을 더했다.
이 같은 김민기의 어린이 사랑은 대학생 김민기의 ‘신정야학’ 활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1973년 김민기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을 모아, 당시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공부를 가르쳤다.
신정야학 출신으로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하고 4년제 대학까지 다녔다는 장남수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김민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또한 김민기가 달동네 어린이들을 위한 공공 보육시설 ‘해송유아원’ 건립을 위해, 금지곡 가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비밀 모금 공연에 참여한 일화도 공개됐다.
당시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농사를 짓던 김민기는 아이들을 위한 공연의 취지에 선뜻 힘을 보태며, 오랫동안 잡지 않았던 기타를 다시 잡았다고.
이후에도 김민기는 해송유아원에 직접 지은 쌀을 기증하는가 하면 운영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고, 해송유아원 원생들이 언제든 학전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게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신정야학을 함꼐했던 김한, 김준규, 이인용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김민기의 남달랐던 어린이 사랑을 전했다.
이들은 “당시 야학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교과서를 별도로 만들었다. 영어 교과서 속에 ‘I am a laborer, you are a owner(나는 노동자, 당신은 사장)’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때 문제 제기한 게 김민기 선배였다.
‘너희가 아이들한테 정신 주입을 하려고 이걸 하려고 한 게 아니지 않냐’라고 했다”며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목적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아이들을 돕고자 했던 김민기의 진정성을 증언했다.
나아가 “저항의 심볼처럼 되었지만 사실 그가 바란 것은 조금 더 좋은 세상,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라면서 “김민기 선배는 그저 그가 만든 노래 ‘상록수’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입을 모아 먹먹한 여운을 선사했다.
이처럼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1부에서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못자리 학전의 뒷것을 자처했던 연출가 김민기의 이야기를,
2부에서 엄혹한 시국 속 음악으로 수많은 이를 위로하고 민심을 움직였던 민중의 뒷것 김민기를,
마지막 3부에서는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소리를 연료 삼아 따뜻한 미래를 만들고자 애쓴 세상의 뒷것 김민기를 조명하며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계기를 선사했다.
또한 김민기를 기억하는 기성 세대에는 진한 공감과 향수를, 김민기를 모르는 세대에는 좋은 어른의 롤모델을 제시하며, 학전의 폐관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멀어져가는 김민기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김민기 주변인사 100여명의 생생한 인터뷰, 나아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초연 영상, 김민기의 친필 노트,
미발매곡 음원 등 지금껏 대중에 공개된 적 없는 다채로운 자료들을 아카이빙해, 대한민국 대중문화사와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김민기라는 거인의 사료로서 가치를 더했다.
한편 SBS 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철저히 무대 뒤의 삶을 지향하며 방송 출연을 자제해 온 학전 대표 김민기의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다큐멘터리로, 5일 3부를 끝으로 종영했다.
연대 재학→폭탄테러 미수 안내상,
학생운동 이유 “가만있으면 행복한데”(학전)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나온 배우 안내상이 학생운동을 하게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5월 5일 방송된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에서는 배우 안내상의 사연이 공개됐다.
이날 안내상은 "제가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나왔는데 저는 신학을 하려고 했다. 목사가 되려고 했고 좋은 목회자가 되어 어렵고 힘든 내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어린 청년의 소망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나라가 우울했다"는 안내상은 "학교에 경찰들이 왔다 갔다 하는 현장들을 보고 '세상이 좀 이상하다.
그러면 난 거기서 뭘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뿐만 아니라 그때 당시 모든 청년들의 고민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안내상은 이처럼 한참 고민하던 시기 김민기의 '두리번 거린다'라는 노래가 많은 자극을 준 사실을 고백했다. '어떻게 가야 하나' 두리번거리고 있는 자신 같아 무척 와닿았다고.
안내상은 "친구들도 오고 교정도 이렇게 아름답고 모두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행복한 조건이고 그냥 갈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제 나의 길을 가자'는 결심을 하고 "학생운동에 투신을 했다"고 밝혔다.
한편 안내상은 학생운동을 하던 지난 1988년 미국 문화원 도서관에 시한폭탄을 설치했으나 불발로 미수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안내상은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위반,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8개월 동안 수감됐다가 석방됐다.
과거 JTBC '썰전'에 출연한 국회의원 우상호는 안내상이 "지하에서 과격한 활동을 했다"며 "미국을 못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지곡 가수’ 김민기, 군사반란 직후 모금공연
“강남 아파트 값↑ 벌어”(학전)
유아원 건립을 위해 위험한 상황에서도 공연을 한 가수 김민기의 선한 행보가 전해졌다.
5월 5일 방송된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에서는 33년 만에 폐관한 대학로의 상징 소극장 학전을 설립한 대표이자 '아침 이슬'의 작곡가 김민기의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행보들이 조명됐다.
이날 한양대학교 명예 교수 정병호는 과거 유아원 운영 자금이 필요해 김민기를 찾아간 기억을 털어놓았다.
정병호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하려고 민기 형에게 갔다. 10월 초였던 것 같다. 그냥 농사지었다.
소작 그야말로 소작. 음악은 전혀 안 했다. 여러 해 동안 기타 전혀 안 잡아 진짜 농부가 되고 싶었던 느낌이더라. 가수, 작곡가의 정체성을 전혀 인정 안 한 시기같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김민기에게 유아원 건립 모금 공연을 부탁했다는 후배들.
정병호는 "그냥 끄덕하시고 본인은 내가 나서서 한다 이런 얘를 하신 건 아닌데 기금 마련 돕겠다고 하시고 공연 위해 얼마나 준비하셨는지는 모른다. 아마 하시지 않고 못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문제는 공연을 앞두고 12.12 군사반란이 터졌다고. 정병호는 "제가 기억하는건 12 12 군사반란이 터진 날 반포에서 (공연을) 기획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 한강다리가 막혀 강북에서 오기로 한 사람이 못 온 생각이 난다. 정세가 아주 불투명했다. 계속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러면서"라고 떠올렸다.
'금지곡 가수' 김민기에게 군사반란 직후 공연은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공연을 포기하지 않은 김민기. 숙명여대 명예 교수이자 당시 건립 모금 공연을 담당한 이기범은 "계엄 시국에 김민기 공연을 한다는 것이 은밀하게 암호처럼 퍼져나가며 건네고 받고 했다. 그 표를 3천 장 팔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입을 챙겨보니 300만 원 정도가 모였다"며 이것이 당시 강남 아파트 값보다 큰 금액이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김민기는 해당 공연 이후 다시 농부의 삶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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