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김건희 특검법' 도봉 토박이 김재섭의 험지 승리 100일 기록

bling7004 2024. 4. 12. 15:12
"국민 요청 엄중히 받아들여야"
‥'김건희 특검법' 김재섭의 소신

 
 
22대 국회에서 야당이 재추진 방침을 밝히고 있는 이른바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국민의힘 당선인 중에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서울 도봉갑에서 민주당 안귀령 후보를 꺾고 당선된 국민의힘 김재섭 당선인은 오늘 <KBS 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과의 인터뷰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요구하시는 국민들의 요청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 같이 말했습니다.

김 당선인은 "법안에 독소 조항들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특검법 논의 자체에는 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재섭 당선인/국민의힘(KBS 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

"여사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그전에 국정 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은 발목을 잡았고 여전히 국민들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이거 해소해야 된다고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저희가 조항 몇 개를 바꾸고 방향성 몇 개를 좀 논의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도 저희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김 당선인은 한동훈 특검법에 대해선 "그냥 사적 복수처럼 저한테는 들렸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김 당선인은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의 관계가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입법부로서 행정부를 견제하고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되는 책임에는 좀 소홀했던 것 같다"며
 
"22대 국회에서는 건전한 긴장관계를 통해 국정의 주도권을 쥐고 정부와 협력할 건 협력하는, 독립성과 자주성을 가진 여당이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만남 필요성에 대해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며 "야당 대표를 만나는 건 좋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당선인은 국민의힘 내 유일한 서울 강북 당선인으로서 "당내에 있는 여러 눈치 보기라든지 줄 서기라든지 이런 것보다는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국힘 김재섭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국민 요구 받아들여야"

 
 
22대 총선 서울 도봉갑에서 승리한 김재섭 국민의힘 당선인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도 우리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 당선인은 오늘(12일) KBS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한동훈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습니다.

김 당선인은 "한동훈 특검법은 사실상 그냥 사적 복수처럼 저한테는 들렸다"면서도 "김건희 특검법을 요구하시는 국민들의 요청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김 여사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국정 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은 발목을 잡았고 여전히 국민들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이를 해소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다만 "사인 시절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특검으로 만들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접근해야 된다고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만남에 대해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면서 "(이번 총선 결과는) 야당과 정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국민들의 메시지"라고 말했습니다.

1987년생인 김 당선인은 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서울 도봉갑 지역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도봉갑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건 16년 만입니다.

김 당선인은 당내에서 자신의 역할과 관련해 "눈치 보기나 줄서기보다는 쇄신적이고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낼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300x250

또 여당과 대통령실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당의 위치가 대통령실과 너무 발을 맞추었다"며 "입법부로서 행정부를 견제하고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책임에는 조금 소홀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22대 국회에서는 여당이 오히려 정부와의 건전한 긴장 관계를 통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또 정부와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야당과 협력할 수 있는 독립성과 자주성을 가진 여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천자칼럼]
김재섭 신드롬

2024.04.12

 
만화 ‘아기공룡 둘리’,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오징어 게임’에는 지역적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서울 도봉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기공룡 둘리 속 고길동 집 대문 앞 풍경이나 ‘응팔’, ‘오겜’의 쌍문동 골목길에서 느껴지듯 도봉구 하면 변두리 이미지부터 연상하는 사람이 적잖다.
 
실제 도봉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2022년)이 가장 낮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대대로 민주당 계열의 텃밭이었다. 도봉구 선거구는 1988 13대 총선 때 도봉갑과 도봉을로 나뉘었는데, 그중에서도 도봉갑은 1992 14대(유인태 전 의원)부터 2020 21대까지 총 8번 중 7번을 민주당 계열이 승리했다.
 
 2008 18대 때 신지호 한나라당 전 의원이 뉴타운 바람을 업고 당선된 것을 빼곤 김근태 전 의원(15~17대)과 부인 인재근 의원(19~21대)이 내리 3선씩 했다.
 
보수당의 험지 중 험지인 이곳에서 이번 총선의 최대 이변이 일어났다.
 
김재섭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 동북권에서 여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당선됐다. 김 후보의 당선은 단순히 ‘깜짝 승리’를 넘어 앞으로 정당의 선거 전략에서 교과서적 사례로 삼을 만한 메시지들이 있다.

그는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 고령층은 물론 20~30대와 10대 학생층까지 섭렵하는 세대별 타깃 선거운동을 했다.
 
올해 37세로 스스로 MZ세대인 그의 인스타 팔로어에는 초·중·고교생이 3000명이나 된다.
 
지역구 내 대부분 일선 학교에 인조 잔디 구장이 없는 것에 착안해 잔디 구장 설치 공약을 했더니 학생들이 인스타 쇼츠 등으로 김 후보 지원에 나섰고, 부모 표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세대별뿐만 아니라 동별 맞춤 공약도 여럿 내놨는데, 이런 디테일이 가능한 것은 그가 3대째 도봉구 토박이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교통 인프라 개선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그의 표현대로 “도봉구에서 가방 메고 등하교하고, 지하철 타고 출퇴근해본 유일한 정치인”이기에 더 호소력이 있었다.
 
김 당선인이 곧 태어날 아기까지 4대째 토박이 구민으로서 ‘변두리 도봉’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도봉 토박이 김재섭의
험지 승리 100일 기록

2024.04.12

 

정권심판론·친명횡재 공천에도
"내가 다진 4년 바닥 민심은 달랐다"

 
국민의힘이 자랑했던 시스템 공천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국민의힘은 서울 강남권과 경기 외곽, TK PK 등 전통적 텃밭을 잘 수성했을 뿐 지난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그릇 속에 여당 프리미엄도, 야당의 각종 사법리스크도 담아내지 못했다.
 
시스템 공천이라고 불린 한동훈표 공천은 낮은 현역교체율, 지명도 있는 중진들의 돌려막기식 공천의 다른 이름이었다.
 
'승산이 있는 공천을 한다'는 계산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감동마저 없는 패배로 돌아왔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입장에서 가장 유의미한 당선자로는 보수의 험지 중 험지인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된 김재섭 국민의힘 도봉갑 당협위원장을 꼽을 수 있다.
 
도봉구를 비롯해 '노도강'으로 불리는 동북 3구는 보수정당에는 불모지와 다름없는 곳이다.
 
 36년 도봉 토박이인 김 위원장은 지난 총선에서 처음 도전장을 냈다가 더불어민주당 3선 인재근 의원에 13.5%포인트 차로 낙선했다.
 
이후 그는 4년을 이 지역 유권자들과 부대끼며 지냈다. 주간조선은 이번 총선에서 그가 승리하든 패배하든 30대 보수 정치인의 험지 도전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고 투표일 100일 전부터 그의 선거운동 전 기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취재했다.
 
'어떻게 하면 수도권 민심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4년 전 숙제를 이번에도 풀지 못한 여당에 그의 도전과 그 속에서 느낀 고민이 좋은 참고서가 되리라 기대한다. 기사는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편집자 주]
 

지난 2월 14일 김재섭 후보가 선거운동을 위해 도봉갑 지역구 곳곳을 다니고 있다. 

 
2024년 4월 9일 선거 하루 전 저녁 8시. 단독 유세와 트럭 유세를 마치고 '김재섭' 이름이 쓰여 있는 LED 조끼를 입고 밤거리를 나섰다.
 
평소와 같이 도봉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고, 마지막으로 우이천으로 향했다.
 
우이천 이곳저곳에 내가 보듬었던 '지난 4년'이 보였다. 등받이가 없는 돌의자에서 어르신들이 쉬시기 불편하다는 민원을 듣고 등받이가 있는 벤치로 바꿨다.
 
다리 그늘 아래서 늘 바둑을 두시는 어르신들 때문에, 이곳을 산책하시는 애견인들은 늘 뙤약볕에서 쉬어야 했다.
 
민원을 듣고 그늘막을 더 많이 설치했다. 벚꽃이 떨어지는 거리, 붙어있는 선거벽보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매일매일 보던 것인데 감회가 새로웠다.

공개된 여론조사들에서 여전히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더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골든크로스의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설사 지더라도 후회는 없었다. 지난 4년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처음 선거운동을 시작한 날과 똑같이 밤 1030분에 일정을 마무리했다.
 

지난 2월 14일 김재섭 후보가 배우자와 함께 쌍문시장을 방문해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도봉 토박이, 도봉이 낳은 스타가 되다

나는 도봉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쌍문시장 골목 뒤편 회색 대문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쌍문역에서 통학버스를 탔다.
 
어머니 손을 잡고 신창시장이나 하나로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창골축구장에 모여 풋살을 했다. 초안산 둘레길에서 데이트를 했던 여자친구는 이제 아내가 되어 출산을 앞두고 있다.

내세울 만한 경력이 별로 없지만 흔히들 평가하는 잣대로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 과(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학벌을 자랑코자 함이 아니다. 자녀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강남을 꿈꾸는 현실에서 나는 도봉을 떠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대단한 재산을 가지거나 학력을 가지신 분도 아니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4년제 대학에 갔다.
 
부모님은 좋은 학벌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굉장히 열심히 사셨다. 나한테는 적어도 부족함 없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셨다.
 
도봉에서 자라고 살아온 나는 누구보다 이 지역을 사랑하고 대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정치경험도 모두 도봉에서 쌓았다. 
 
2020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출마했고, 낙선 이후 미래통합당 도봉갑 당협위원장, 국민의힘 도봉갑 당협위원장을 지냈다.

도봉갑은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고(故) 김근태·인재근 의원 부부가 각각 3선씩을 지낸 민주당 텃밭이다. 
 
24년간 민주당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던 땅이라는 의미에서 나는 이곳을 민주당 '봉건 영토'라고 표현한다. 그래도 지난 21대 총선에서 나는 인재근 의원에게 13.5%포인트 차로 선전했다. 
 
20%포인트 차가 넘게 났던 20대 총선에 비하면 훨씬 좋은 성적표였다. 그때만 해도 정치 신인이었기 때문에 4년 전보다 나은 성적표를 받았던 나는 고무됐다.
 
4년간 열심히 준비하면 수도권 험지 중 험지인 도봉에 보수정당 후보로서 처음 당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준비했다.

도봉갑의 선거운동은 총선 약 100일을 앞둔 1월부터 치열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동진 예비후보가 이른 시기 선거 사무소를 열었다.
 
이 예비후보는 도봉구청장만 3연임을 한 인사로 도봉구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3선 인재근 의원의 출마설도 돌았다.
 
그러다 지난 2월 14일 인 의원은 이재명 대표와의 면담 후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김남근 변호사와 유은혜 전 부총리가 후보로 거론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고는 민주당은 도봉갑을 전략공천지역으로 정했다. 그만큼 도봉갑의 판세가 심상치 않다고 민주당에서 봤다고 나는 해석했다.
 

지난 2월 8일 김재섭 후보가 지역 유권자들과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이재명의 입' 안귀령의 등장

"안귀령? 누구지?"

지난 2월 24일 상대 후보가 드디어 정해졌다는 속보가 나왔다. 캠프원들도 안 후보가 누군지 처음 이름을 듣는다는 반응이었다.
 
알아보니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아이돌'이라고 불릴 만큼 젊은 여성이라고 했다. 주변에서는 '무조건 이긴 선거'라고 축하의 인사가 많이 왔다.
 
유세에 나가면 "민주당에서 전혀 도봉구를 모르는 사람을 내세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선거를 오래 준비한 이동진 예비후보도 반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저는 이제 22대 총선 도봉갑 예비후보로서의 활동을 내려놓고자 한다"며 "후보들 간 어떤 경쟁력 조사도 없이, 도봉구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후보를 일방적으로 내려꽂는 전략공천 방식의 결정에 속수무책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파를 떠나서 도봉구와 전혀 연고도 없는 인물을 내려다 꽂는 것이 진짜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의아했다.
 
과거 영호남에서 한쪽은 YS당, 한쪽은 DJ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고 했는데 민주당에서 도봉을 그런 곳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화도 났다.

예상대로 안 후보는 도봉갑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인재근 의원 보좌진이 돕는다고 하지만 후보 본인이 지역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그는 선거운동 도중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는 주민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정치 초보 같은 모습도 많이 보였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 옥내외에서 확성장치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엄격히 제한된다. 그러나 안 후보는 공식선거운동 기간 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선거운동복을 착용한 상태로 마이크를 여러 번 이용했다.
 
막바지에는 선관위가 안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기관에 '수사자료 통보'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현안에 밝지 못했던 안 후보의 선거 전략은 '이재명'이었다. 그는 등장부터 "외모는 차은우보다 이재명"이란 과거 발언으로 더 주목받았다.

반응형

이 대표의 지난 대선 공보물과 구조나 디자인이 완전히 같은 공보물을 내놓고, 후보 토론회나 유세에서도 본인만의 공약이나 의견 없이 이 대표의 당론으로만 밀고 간다고 느꼈다.
 
인생의 상당기간을 지역구에서 살고, 4년 넘게 일해 온 사람. 그리고 지역구를 헷갈리는 사람. 둘 중 지역을 더 잘 알고, 이에 따라 더 잘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하고 선거구 곳곳을 누볐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만 '반짝' 뛰는 텃밭 중진 정치인들과는 달리 나의 선거운동이 '더 오래, 더 많이'를 고집한 이유다. 650㎞. 내가 지난 1월 5일부터 4월 9일까지 쌍문1·3동과 창동을 누빈 거리의 총합이다.
 
국토 최북단인 임진각에서 최남단인 제주도까지 국토대장정을 하면 600㎞ 정도를 걷게 된다고 하니, 전국을 누비듯 도봉갑을 걸은 셈이다. 3개월간 일평균 7~10㎞, 약 90만보를 걸었다.
 
내 명함을 여러 날, 여러 장 받았다는 주민들과 "10장 모아오면 상품을 주겠다"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게 곳곳을 다니며 유권자들에게 내가 진정한 지역일꾼이라고 호소했다.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는 계단과 건물 바깥까지 600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찾아와줬고, 이번 선거는 이겼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지난 총선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지난 4월 9일 유세차량에 올라 마지막 단독 유세를 하고 있는 김재섭 후보. 이날 1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정권심판론 잠재운 인물론

가장 큰 벽은 아무래도 '정권심판론'이었다. 도봉갑에서 일하지 않았던 민주당을 심판하자는 '도봉 심판론'이라는 프레임을 짜고, 도봉갑 주민들을 위한 맞춤형 정책들과 내가 도봉갑에서 만들어낸 성과, 그리고 민주당이 어떻게 도봉갑을 방치해왔는지를 강조했지만 소용없었다.
 
의대 정원 문제, 대파 가격 논란, 호주대사 감싸기 논란, 채상병 사건 등. 대통령의 언행이 민심과 어긋날 때마다 여당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지난 3월 11일 김어준이 운영하는 '여론조사꽃'에서 첫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안귀령 41.3%, 김재섭 33.1%. 안 후보는 처음부터 모든 지지율 조사 결과에서 나를 앞질렀다.
 
정권심판론은 모든 것을 쓸어버렸고, 내가 내세운 인물론은 여기에 힘없이 쓸려갔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숫자가 공개될 때마다 의아했다. 나는 4년 넘게 도봉에서 했던 고민들과 주변을 개선해나간 성과들을 유권자에게 알리는 데 주력했지만, 상대는 "안귀령의 이름으로 정권을 심판해달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전국 유일의 MZ격전지로 꼽히는 것이 무색하리 만큼, 기성정치와 싸우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이재명 후보가 지원 유세를 오지는 않았지만,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 정청래 최고위원 등의 지원 유세가 있었다.
 
안 후보가 아닌 이재명 대표와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왜 국민의힘에 있어." 내게 다가와 아쉬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주민분도 있었다.
 
빨간 점퍼 대신 흰 점퍼로 갈아입었다. 여당 당색을 빼고 인물론으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은 원래 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할 말은 하겠다, 그래도 염치 있는 사람이다.' 그런 표현들을 하고 싶었다.
 
"제발 이겨줘, 미치겠어" "창동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어. 구청장도 바뀌고. 떨어뜨려야지 되겠어" "믿을게, 잘해. 좋은 소식 기다릴게" "이번엔 바뀌어야지" "꼭 될 거야"…. 민주당이 이끈 지난 30년간 도봉구는 재정자립도 서울 최하위,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 서울 꼴지를 기록했다.
 
인구 유출로서울 최초로 폐교한 고등학교도 생겼다. 서울에서 가장 적은 지하철역 수 등 교통난도 가중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반성 없이 정권심판론을 내세우고 있는 점이 화가 났다.
 
민주당 국회의원 아래서 지역 형편이 어려웠다고 호소하며 나를 지지하는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낙하산' 상대에게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후보자 토론에서도 안 후보는 정권심판론만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의 협조를 얻어 재개발을 하겠다고 한다.
 
도봉갑만을 위한 고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정권 심판을 할 것인지, 정부·여당과 협력해 도봉갑의 개발을 이끌 것인지 둘 중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꼬집어 물었지만, 안 후보는 둘 중 하나만 고를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과연 이런 태도가 한국 정치를 위해 좋은 일인지, 지역 유권자들에게 좋은 것인지 묻고 싶었다. 오기가 발동했다.
 
더 좋은 선택이 아니라 아군과 적군 중 누가 내 편인가만 따지는 이 견고한 이분법을 내가 깨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지역 유권자들에게 더 다가갔다.
 

지난 4월 9일 선거를 하루 앞두고 밤늦은 시간까지 창동역에서 유세 중인 김재섭 후보

 
극단의 증오정치와 마주하다

견고하게 굳어진 신(新)지역주의만큼이나 많은 고민을 던져준 것은 증오로 얼룩진 현실 정치의 민낯이었다.
 
"이태원에서 청년 160명이 죽을 동안 뭘 했나" "젊은 사람들 군대나 보내고 너희 당은 노인 표나 받아처먹으려는 ××들"…. 선거를 약 40일 앞두고 쌍문역에서 인사를 하는데 한 구민이 이틀에 걸쳐 우리를 찾아와 정부·여당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선거운동을 돕던 만삭의 아내 앞에서 큰소리로 폭언을 하며 위협하고, 자리를 피했음에도 지하철 개찰구 위까지 쫓아오는 그를 말리던 선거운동원을 밀쳐 전치 2주가 나왔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그가 외치는 언어들은 혐오정치의 언어들이었다.
 
아무리 본인이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거나 정치인·사회에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폭력으로 선거운동을 방해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다.
 
이재명 대표와 배현진 의원의 피습사건을 보며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줄은 몰랐다.
 
누군가는 이 증오의 정치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인부터 바뀌지 않으면 아군과 적군, 선과 악으로 구분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이 현실을 끊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분노를 표출하던 그 유권자가 선거운동방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지만, 상해죄에 대해서는 선처하겠다고 밝혔다.

극단의 정치를 어떻게 풀 수 있을 것인지는 내가 정치에 입문하고 지금까지 계속하는 고민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는 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정치인의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미지를 벗기 위해 TV예능에도 출연했다. 
 
MZ세대에서 인기를 끌었던 정치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커뮤니티'에도 출연했다.
 
나를 알아봐주시는 젊은층들 대부분은 '더커뮤니티'를 보고 팬이 됐다는 말씀들을 해주셨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뜻깊었던 것은 더불어민주당 MZ 정치인인 성민(박성민 전 대통령비서실 청년비서관·28)이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성민이와 토론할 때는 격하게 부딪치지만 뒤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모습도 인상깊었다는 평을 받았다.
 
정치인들이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서로 토론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우리 국민들이 극단 정치도 변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의미 부여를 하고 싶었다. '더커뮤니티'를 촬영하는 동안 매번 식사 당번을 자처했다.
 
밥을 좋아해서, 밥하는 것도 좋아해서 그랬다. 여느 때처럼 12명 출연자의 아침 식사를 위해 고기를 굽고 있었다.
 
"얼마나 걸리냐"며 고기 굽기를 살피던 테드(유튜버)가 내게 대뜸 "정치를 하면 뭐가 제일 어렵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들 마음을 사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정치인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지만, 선거에서 이기려면 인기를 얻어야 한다. 정치 구도 자체가 계속 포퓰리즘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고, 거기서 괴리감이 많이 온다."
 

지난 4월 11일 새벽 당선이 확정된 후 선거사무소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재섭 후보

 
 
험지에서 살아남는 법

도봉구민들에게 내가 가장 크게 다가갔던 지점은 김포의 서울 편입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을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를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서울을 크게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서울 안에 있지만 서울 취급을 못 받았던 지역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도봉구는 서울을 대상으로 한 규제들은 다 받지만, 정작 보통의 서울시민들이 누리는 교통이나 문화 관련 인프라는 하나도 없는 곳이다.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해 야당 지지자들도 많이 반겨주셨다. 이것은 여와 야를 떠나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포 발언을 기억하며 "얘기 너무 잘했어"라고 격려해주는 주민들을 술자리 인사에서 만나는 일도 있었다. 여당에 속해 있지만 할 말은 한다는 모습을 기억해주시고 믿어주셔서 감사했다.
 
이런 과정들은 어떻게 험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우리 당에 적대적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조금씩 녹여내니 그때부터는 다가가는 일이 훨씬 편해졌다.


"재섭이형, 저도 맞팔해주세요!"

거리에서 책가방을 든 학생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내 인스타 팔로어 중 3000명 넘는 숫자가 초·중·고생이다.
 
"사랑해요"라며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달려들 때마다 힘이 난다. 하이파이브로 인사를 나눈다.
 
저만치서 수줍게 반가워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면 내가 먼저 다가가 "셀카 찍어도 돼" 하고 자세를 취해준다.
 
도봉구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무조건 맞팔(인스타그램을 서로 팔로잉하자는 의미)을 해주고, 나를 태그하며 응원하는 스토리를 올리면 무조건 틈날 때마다 리그램을 해준다. 선거운동 직전에는 아이들과 떡볶이 모임도 가졌다.
 
 70대 유권자 부부는 창동역 퇴근길 인사에서 "손자가 보여줬어"라며 나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다.
 
"내 손주가 중2인데, 학교 부회장으로 출마할 때 길에서 만난 김재섭에게 조언을 받았다대. 우리야 원래 국힘 지지자지만, 애 아빠는 민주당 당원이고 애 엄마는 중도층인데…. 애 엄마는 거의 국힘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같어."
 
이 뿌듯한 이야기를 전해듣는 순간, 아이들로부터 받는 지지가 40·50대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실감했다.

길거리를 다닐 때마다 "형, 잔디 꼭 깔아주셔야 해요!" 소리도 들린다. 도봉갑에는 노곡중·창일중·창북중·창동고·효문중고 등 학교들이 많은데 잔디 운동장이 없거나 열악한 상태다.
 
그래서 당선이 되면 모두 잔디를 깔아주겠다고 공약을 했더니 학생들 사이에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쭉 퍼졌다고 한다.
 

지난 4월 9일 마지막 유세 일정으로 우이천을 찾은 김재섭 후보. LED 조끼를 입고 벚꽃길을 걷고 있다.

 
나는 왜 정치에 입문했나

지난 총선과는 다르게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나를 알아봐주시고 지지해주시게 된 건 방송출연 덕분이 크다.
 
나만큼 방송에 나가 도봉의 이야기를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 자부한다. '도나스(도봉이 낳은 스타)'임을 강조하고, 매번 도봉의 문제를 화두로 삼았다.
 
결혼을 하고 곧 아이가 생긴다는 점도 지난 총선과는 다른 지점이다. 이제는 나를 어엿한 어른으로 보고 응원해주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지난 총선 때 가장 많이 들은 얘기 중 하나는 "새파랗게 젊은 것이 무슨 정치를 하겠다고 그래" 등과 같은 구박이었다.
 
어르신들의 눈에는 아직까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었던 내가 그저 어린애로만 보였던 것 같다. 젊은 정치인이 그만큼 없다는 방증이기도 한 것 같다.
 
당선이 되고 나니 정치에 처음 입문하게 된 계기를 생각하게 된다.
 
앞서 출연한 정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나는 난생처음 공개적으로 내 얘기를 했다.
 
'열등감'이 스피치 키워드로 주어졌고, 나는 '변호사 아닌 서울대 법대생의 생존기'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에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개천에서 용난 것처럼 도봉에서 자라 서울대 법대를 갔던 나는, 입학 이후에도 가족과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하기 싫은 공부를 했고 서울대 법대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군대로 도망을 갔었다. 이후 친구들이 판검사, 변호사가 되는 동안 나는 노점상을 하고, 회사도 다녀보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나는 대학을 졸업한 백수이며 낙오자, 패배자라는 인식을 주변으로부터 받게 됐다.
 
친구들 결혼식 경조사에도 못 갈 정도로 여유와 자신감이 없었다. 열등감을 채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책을 게걸스럽게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해야 하는 일들, 주어진 사회적 역할 때문에 하고 싶은 일들을 못하게 되는구나." 생각을 많이 했다.
 
그게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좋은 기회에 정치를 할 수 있게 됐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좌절감인 '또래압박' 문제에 공감했다는 반응을 주변에서 많이 얻었다. 뱉은 만큼 잊지 않고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극단의 정치 속에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 이런 자세야말로 서로를 이해하는 실마리이며 아군에게 손가락질 받아도 누군가가 묵묵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래 정치인들이 '새정치'를 외치며 제3지대로 나가는 동안 수도권 대표 '험지'에서 두 번째 도전을 하며 보수의 가치를 지켰다.
 
'대파' 정쟁만 벌이며 정책을 앗아간 기성 정치와 맞서 그동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민생 하나부터 더 챙기는 '청년 정치'를 내세웠다.
 
이런 결단과 행보 역시 누군가는 묵묵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의 기성 정치인들이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들, 보수 정당의 청년 정치인들이 감내하지 않았던 일들이 진짜 나의 도전이었다.
 
 
 
 

출처 https://naver.me/GVNFZ3xL https://naver.me/GmfiQmZv https://naver.me/FoHKBdcX https://naver.me/G9tkjRls
300x250
반응형